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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보다, 견딜 수 있는 일을 먼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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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보다, 견딜 수 있는 일을 해봤다 🪫

어릴 땐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좋아하는 걸 해야 오래 버틸 수 있다고 들었다.
근데 현실은 좀 달랐다.

나는 하고 싶은 걸 선택해서 이 길로 온 게 아니다.
나는 세상의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면서 삶의 의미를 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따라주지 않았다. 어려운 집안 상황을 보면서 국내 여행조차 내게는 사치임을 알게 된 시점부터 나는 무언가를 하기에 먼저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대학도 가지 않으려고 했으나, 현대 사회에서 고졸과 대졸의 차이점은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가기는 했다.
없는 집안에서 대학이었기 때문에, 전공 선택 조차 내게 너무 힘겨운 일이었다.
그래서 대학을 합격하고 나서 들었던 생각이, ‘괜히 학과를 잘못 선택해서 졸업했는데 취직이 안되면 어떡하지?’ 였다.
물론 입학 후 전공을 바꾸는 방법도 있겠지만… 다시 적어보지만 돈이 없으면 선택지가 좁아진다.
나한테는 그 전공을 바꾸는 시간 조차 사치였다.

다행이도, 컴퓨터 전공은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대입 당시, 나는 앞으로의 사회가 SW를 중심으로 발전할 것이라 예상했고, 그에 따라 이쪽으로 공부하면 정부 지원을 받아 그나마 더 윤택한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학과로 대입을 했고, 노력으로 극복하여 현재 나이, 경력에 비해 만족스러운 성과를 보고 있다.


🛠 선택의 기준은 ‘좋아함’이 아니라 ‘견딜 수 있느냐’였다

개발 공부를 할 때 느낀 것은, 내가 정말 재능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들은 당연하게도 패스하는 시험에서 3번이나 F를 받아 졸업조차 할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놀았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으며, 내가 열심히 한 것을 아는 주변인들은 F를 받았다는 말에 안타까운 탄식만 내뱉었을 뿐이었다.

이 때도 빠르게 전공을 바꿔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내가 생각한 미래에서는 SW가 유망했기에 다시금 SW를 선택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오전에 대학교에 다녀온 후, 오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학교 과제 및 개발 공부를 하며 다시 새벽 2시에 취침하는 그런 생활을 했다.

대부분의 동기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개발공부를 도저히 못하겠다고 탈주를 해버렸고, 잘 풀린 친구들은 공무원으로서 일을 하고 있지만
잘 안풀린 친구들은 아직도 취준생으로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에 비해, 나는 끝까지 버텨서 남들이 취직이 안된다고 난리일 때 여러 회사에 합격해서 연봉협상을 여러 번 진행 했고,
졸업 직전에 결국 미국 스타트업에 취직해서 꽤나 만족스러운 환경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그것도 벌써 4년차에 접한.


🧠 감정보다 먼저 본 건 현실이었다

  • 우리 집은 여유롭지 않다.
  •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하다.
  • 기술 직무는 상대적으로 연봉이 높고, 원격 가능성도 있다.
  • 당장 다른 걸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감정은 눌렀다.
“나중에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되면 그때 고민하자.”
일단 지금 견딜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라는 마인드로 살았다.


🧩 그래서 만든 나만의 판단 기준

첫 단추부터 사실 상 망했기 때문에, 그 다음 회사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는 완벽하게 맞는 곳을 찾기보다는 부담이 적은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인지를 먼저 봤다.

예를 들어:

  • 사람을 많이 안 만나는 구조가 좋은가?
  • 회의가 적고 정리된 일처리가 좋은가?
  • 루틴이 명확하고 야근이 적은 조직인가?
  • 원격근무가 가능한가?

전공을 떠나 일이 힘든 걸 감당할 수 있는지는 ‘일 내용’보다 ‘일하는 환경’이 좌우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3학년 2학기에 잠시 일했던 국내 유명 인공지능 회사에서 편의를 봐줄테니 좋은 초봉과 함께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에 출근하라고 제안이 왔으나,
그 회사 분들이 인간적으로 너무 착하고 감사한 분들이었지만,
한국 특유의 보이지 않는 수직문화에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거절하고 그 회사를 떠났었다.

돈도 없는데다가 취직 시장이 얼어버린 상황에서 저런 귀한 기회를 스스로 찬 내가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수평문화의 외국계 회사로 무조건 취직해서 더 잘나가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그렇게 처절하게 열심히 노력하니 졸업 직전에 성공했다.


🔄 부업은 숨 쉴 틈을 만들어줬다

현재 재직 중인 미국 회사에서는 나를 필요한 인재로 존중해주기 때문에, 그리고 근무 환경이 매우 유연하기 때문에 감사하게 잘 다니고 있다.

다만 나는 가장으로서 우리 가족들을 챙기고 있고, 내 월급의 50% 이상을 생활비로 내고 있으며
그 외에도 아픈 가족의 병원비와 각종 보험료까지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내 미래를 위해서라도 부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부업을 시작한 계기는 긍정적이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더 성장하는데 계기가 됐던 것 같다. 부업을 하면서 여러 것들을 체험해봤고, 그 과정을 통해 내 커리어를 한 방향에만 걸지 않아도 된다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견딜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시도는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씩 나다운 방식을 찾고 있는 중이다.


🧘 마치며: 하고 싶은 일은 나중 문제다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게 아니라고 해도 괜찮다.
그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시기와 상황이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 해내고 있다.
그게 지금의 나를 지키는 커리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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